문화
한복·고궁·K-POP까지 하루에 담는 문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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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구 사택 터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신석구가 1919년 3·1운동 당시 살던 곳이다. 신석구(1875~1950)는 1907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세례를 받고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917년 9월 남감리교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8년 11월부터 서울 수표교교회 담임 목사로 재임하던 중 오화영의 권유를 받고 3·1운동 민족대표로 참여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경에 붙잡혀 2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38년 7월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일으켜 옥고를 치렀으며, 1945년 5월 일제가 강요한 전승기원 예배와 일장기 계양 등을 거부하는 활동을 펼치다 연행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9년 4월 19일 진남포 반공비밀결사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6·25전쟁 때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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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중명전(重眀殿)의 ‘중명’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다’라는 뜻으로,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후 수옥헌(漱玉軒)이라고 불렸다.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고종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편전 겸 접견소로 이용하였다. 수옥헌이 중명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06년 이후로 보여진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서 활용하다가, 2009년에 복원공사하여 2010년에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역삼동성당강남지역의 교세 신장에 따라 1984년 8월 1일 대치동 성당과 양재동 성당의 관할 구역 중 일부(2,263명)를 분할하여 신설되었다. 초대 김구희(세자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주보성인을 ‘성 최경환(프란치스코)’로 정하였으며, 임시가건물을 축조하여 사용하면서 새 성전 봉헌을 준비하였다. 교우 김대환 형제가 봉헌한 신축부지에 1992년 12월 25일 성당 신축공사를 시작하였다. 착공한 지 5년 만에 연건평 3,960평 건축, 순공사비만 약 120억 원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완공하여 1997년 9월 21일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시고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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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홍화문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홍화문은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같은 동궐인 창덕궁의 정문(돈화문)은 앞면이 5칸인데 비해 홍화문은 3칸의 작은 규모로 지었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영조 26)에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기 전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세금제도의 개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또 정조는 1795년(정조 19)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황후)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홍화문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아래층은 기둥 사이마다 2짝씩 문짝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게 하였으며 위층은 마루를 깔고 앞뒤 벽면에 조그만 널문들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 꼭대기 양끝의 조각과 부드럽게 굽어 내린 내림마루 부분의 조각상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더 돋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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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창경궁(昌慶宮)은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옛 수강궁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원래 1418년(세종 즉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이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인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창경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중건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4년 뒤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심하였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한 후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경궁은 남향으로 있는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남산골한옥마을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400년 후 서울정도 천년을 기대하며 1994년 당대의 기억을 매설한 서울천년타입캡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옛 가옥을 복원해 놓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천우각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이 이전·복원되어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게 한 예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모두 다섯 채의 한옥으로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이 있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옥인동 윤 씨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고 나머지 건물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즐기는 다양한 체험거리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옥 다섯 채를 활용하여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를 체험할 수 있고, 전통예절학교와 한방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는 전통혼례가 실제로 치러지고 전통혼례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천우각 맞은편 원두막에서는 짚공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천우각 무대에서는 태권도 시범공연과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피금정 마당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동행하며 설명해주는 전통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서울 약현성당약현(藥峴) 성당은 소규모 성당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1886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천주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명동 성당 아래 공소(公所)로 설립되었다. 1891년 당시 명동 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두세 신부가 합동 (蛤洞)에 대지를 마련하고, 부주교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와 시공감독을 맡아 그 다음해인 1892년에 약현 성당이 탄생하였다. 이 성당이 위치한 곳은 예전에 약초를 재배했던 지역으로 ‘약초 밭이 있는 고개’ 라는 뜻의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에 줄여서 ‘약현’이라고 했는데, 서울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 부근의 지명으로 사용되어 약현성당이란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이 성당은 우리 나라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 건축물로 주목된다. 또한 고딕적인 요소를 부분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반원형의 둔중한 아치 형태 지붕과 창의 면적을 좁게 나타내는 등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갖는 벽돌조 건물이다.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으로 옆면 창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백인제가옥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다. 백인제가옥은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윤보선 가옥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소개되고 있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黑松)을 사용하여 지어진 백인제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갖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별동으로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사랑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가옥만의 특징이다. 정원에서는 당당한 사랑채를, 중정에서는 넉넉한 안채를, 그리고 후원에서는 아담한 별당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은 우리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한 자리에 모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미라클 대주주 진도준과 순양 그룹 회장 진양철이 대면한 장소는 ‘백인제가옥’으로 백인제가옥은 대표적인 근대 한옥으로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랑채부터 안채, 정원과 별당채를 통해 당시 상류층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가옥이기도 하다. 진양철과 진도준이 마주한 곳은 사랑채로, 해설 예약을 할 시 이곳의 내부 관람도 가능하니 잊지 말고 체크해 두는 것을 추천한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덕수궁 대한문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주변이 환구단을 비롯하여 새로운 도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은 1906년(광무 10) 문을 수리하면서 바꾸게 되었다. 원래 대한문은 약 33m 앞에 있었으나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문을 지나서 있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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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묘역함양 여씨 묘역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2동에 위치한 함양 여씨 가문의 선영이다. 함양 여씨의 시조는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여어매로, 877년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에 귀화한 인물이다. 묘역에는 조선 전기 태종 때 호조좌랑과 호조참판을 지낸 숭의랑공과 그의 부인 청송 심씨의 묘가 상하로 조성되어 있다. 묘는 세종 10년(1428)에 조성되었으며, 부인은 정승 심백덕의 손녀이자 판사 심의구의 딸이다. 묘역은 총 1,025㎡ 규모로, 봉분 2기, 묘비 1개, 상석 2기, 문·무관석 각 2기가 있으며 조선 전기 분묘 양식과 석물 연구에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창의문(자하문)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1413년(태종 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이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422년(세종 4)에는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1617년(광해군 9)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해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1741년(영조 17)에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976년 가옥 중 일부가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아있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민영휘와 그 본처 대방마마 평산신씨와 입양한 장남 민형식 등은 경운동에, 첩인 해주마마 안유풍과 그 아들 민대식은 관훈동에 살았으며 그 자식들까지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에 한데 모여 살았다. 관훈동 30번지는 1970년대까지 민영휘의 자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가 경매와 매매를 거친 끝에 1986년 경인미술관이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경인미술관 소유 당시인 1995~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안채 일부와 문간채가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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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민공 이경직 묘역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경직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경직은 이항복과 김장생의 제자로, 조선 선조 때 승문원에서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화유수를 지내었고, 병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도승지, 호조판서 등의 여러 관직을 맡아보았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일본에 회답사의 종사관으로 다녀오고, 1642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전라절도사로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병조참판으로 청나라의 사신과 교섭하여 화의를 성립시키기도 하였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1668년(현종 9)에 세운 것으로, 김류가 비문을 짓고 그의 셋째 아들인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역사적·학술적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를 지니며, 선생의 묘소 일대는 조선시대 당시의 묘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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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사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구강사는 서울 동부지역 천태법음 요람이자 포교도량으로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사찰이다. 5층 단독 건물로 5층에 법당이 있으며, 3층에는 교육시설인 금강유치원이 있다. 정기법회는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열리고 있으며, 불교대학도 운영되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명락사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있는 명락사는 관악산 줄기의 끝자락 도심 상업지역에 있다. 40여 년 넘게 서울 서남권의 포교 활동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포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찰이다. 청년회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정기 법회를 갖는다. 2호선 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중간지점에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본원정사(서울)본원정사(本願精舍)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소속의 사찰이다. 본원정사에는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불이 나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불 사이인 부처님 없는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들어가 교화해 제도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 주지소임을 맡은 원성스님은 이 지장보살상에 감화를 받아 지장보살의 본원을 따르고자 서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도 본원정사로 바꾸었다. 이후 본원정사를 사바세계 중생들의 몸과 마음의 병을 다스릴 수 있는 도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언제나 열려있는 도량으로 서울시민과 불자들에게 번잡한 마음을 쉴 수 있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도량으로 본원정사를 장엄하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경국사(서울)경국사는 1325년에 자정율사가 창건하였는데, 삼각산의 청봉 아래 있다고 하여 ‘청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주인 자정율사는 계율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화(法華), 유식(唯識) 등에서도 조예가 깊었으며, 계율과 법화경(法華經) 관음신앙을 승상 하던 사찰이었다. 그리고 1349년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가 중국에 가서 석옥청공(石屋淸珙) 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경국사에 공민왕의 청을 받아 금란가사와 주장자(拄杖子)를 하사 받고 국사가 되었다. 1545년, 명종조(明宗朝) 때 왕모(王母)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사를 하면서 국가의 경사스러움을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 1698년에는 연화승성 스님이 절을 중수하고 천태성전을 세웠다. 천태성전은 독성을 모신 전각으로 이때 기록한 『천태성전상량문』이 지금도 전한다. 전 대통령 이승만도 경국사에 주석하던 보경스님이 인품에 감화되어 전 닉슨 부통령과 함께 참배한 일화도 전한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보경 금어 큰스님이 뒤를 이어 주지 소임을 맡은 지관 대종사(전 조계종 총무원장)가 경국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으며, 2005년에 한국불교의 율풍 진작에 헌신했던 자운대율사의 계주원명사리탑(戒珠圓明舍利塔)도 이곳에 세워졌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류순정·류홍 부자 묘역조선 전기의 문신 류순정(1459~1512)과 무신인 그의 아들 류홍(1483~1551)의 묘역이다. 류순정과 류홍 부자는 공을 세운 공신으로, 이 묘역은 16세기에 조성되었다. 오늘날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父子) 2대 공신묘역으로, 돌로 만들어 묘 앞에 세워 둔 석물들의 양식과 묘역의 조성 형태로 조선시대 공신의 묘를 세우던 관습이나 제도 등 묘제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류순정의 묘 형태는 부인과 상하 합장으로, 위는 류순정의 묘이고 아래는 부인 안동 권씨의 묘이다. 부부의 묘역 왼쪽에는 류순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67년(명종 22)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한성부 판윤이었던 강혼이 지었고,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였던 송인이 썼다. 류순정의 묘에서 서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언덕에 아들 류홍을 비롯한 후손의 묘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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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암(서울)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학도암은 ‘학이 이르렀다’는 뜻의 한자에서 이름이 비롯된 사찰로, 주변의 자연 풍경과 함께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학도암은 암자 뒤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높이 13.4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으로, 1870년(고종 7)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바위 면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 불상은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국내에 남아 있는 마애불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관음보살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과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학도암에서는 마애관음보살좌상과 함께 불암산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와 서울 노원구·도봉구 일대까지 이어지는 주변 조망도 감상할 수 있다. 사찰 입구에는 작은 찻집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의열사(용산)의열사는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애국 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임시정부 요인(임정 의정원 초대 의장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장 차이석), 3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 13일 합동 추모제전을 봉행하였으며, 해마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연례적으로 제전을 봉행해 오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서빙고동 부군당서빙고동 부군당은 조선시대 이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와 주민의 안녕을 위해 세운 제당이다. 부군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서만 불리던 당의 명칭이다. 이 당은 조선 후기 신당의 건축양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울지역의 동제 신앙을 보여주는 기와를 올린 작은 집으로, 조선 인조 13년(1635) 당을 고칠 때 걸어둔 현판을 비롯한 5개의 현판과 무신도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무신도는 조선 태조 내외분, 출산과 목숨, 농사의 신이라는 삼불제석의 그림이라고 전하는데, 마을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창덕궁 인정문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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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성지절두산은 원래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병인박해(18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 10월 순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절두산성지 내에는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을 비롯하여,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 한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숨 쉬는 뜻깊은 성지이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옛 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용산신학교는 1892년,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두 건물 모두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 감독했다. 용산신학교는 반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 건물로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며, 중앙에 현관과 지하층 출입구를 두고 좌우에 1층 현관에 이르는 계단을 설치했다. 신학교는 오늘날의 혜화동으로 이전하였고, 현재 존재하는 건물은 성모병원분원으로 사용하다가, 성심수녀회에서 1956년에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본래의 건물 일부에 증축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반대편 북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신자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 형식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 위의 작은 뾰족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성당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가 보이는데, 예수성심의 사랑이 만방에 퍼져나가는 매우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으로, 성당 미술 작품 순례에 있어서도 필수 코스로 꼽힌다. 또한 10여 년 전에 유리화 화가이신 마르코 수사님(프랑스)이 좌우 측면과 2층 후면에도 은은한 유리화 작품을 새기면서 성당 전체가 해의 이동에 따라 시간마다 색깔이 달라지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두 건물은 모두 가톨릭 교회의 성지로 등록되어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유해가 50여 년 동안 모셔져 있었고, 또 사제들의 양성을 위한 소신학교로 있었던 자리이기에 해마다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서울 헌릉(태종·원경왕후)과 인릉(순조·순원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능이다.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태종, 오른쪽(동쪽)이 원경왕후의 능이다. 1420년(세종 2) 원경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원경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태종은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만들었다. 2년 후 1422년(세종 4)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능침 봉분은 모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과 영저(금강저) 및 영탁(금강령) 등을 새겼다. 봉분 주변으로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정중석,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은 다른 왕릉에 비해 두 배 더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따른 것이다. 능침 아래의 신도비각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세운 신도비와 1695년(숙종 21)에 원래 신도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인릉은 조선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황후 김씨(1789~1857)의 능이다. 인릉은 한 봉분 안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으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에 따라 앞에서 봤을 때 왼쪽에 순조, 오른쪽에 순원황후를 모셨다. 1834년(순조 34)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교하의 장릉(인조) 근처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1856년(철종 6)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긴 인릉 자리에는 원래 세종의 옛 영릉이 있던 곳이었는데, 인릉을 공사하면서 주변 땅에 묻혀 있던 세종의 옛 영릉 석물과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옛 희릉 석물을 다시 꺼내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다시 사용한 석물은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이며, 일부 석양과 망주석, 석마는 새로 제작하였다. 이는 인릉을 옮긴 후 편찬한 『인릉천봉산릉도감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인릉을 옮긴 후 다음 해 순원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릉에 합장되었다. 능침 아래 비각 안에는 두 기의 표석이 있는데 1비는 조선시대에 세운 표석(순조대왕, 순원왕후)이고, 2비는 대한제국 때 세운 표석(순조숙황제, 순원숙황후)이다.+ 내 코스에 넣기ⓒ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공사가 고른 웰니스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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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치유숲
hongdae
오두산 치유숲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더해 조성된 특별한 공간으로, 자연과 예술, 치유가 조화를 이루는 힐링 명소이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자화상, 사랑의 거미줄, 명상 그림, 소망탑, 비상폭포 등은 모두 자연 속 재료인 돌과 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보고 느끼며 감상할 수 있다. 숲 속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게 되고, 자연이 주는 위로와 예술의 메시지가 어우러져 진정한 치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숲 안에는 ‘카페 오두’를 비롯해 숙박 가능한 ‘옴스테이’, 예술 체험 교육, 플리마켓, 소규모 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되어 방문객들에게 보다 풍성한 경험을 선물한다. 가족, 친구, 연인 누구와 함께 방문하든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두산 치유숲은 고성의 숨겨진 힐링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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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겨효소찜질테라피
쌀겨효소찜질테라피는 미생물이 쌀겨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열을 활용하는 이색적인 건강 관리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인위적인 히터를 사용하는 대신, 미생물의 대사 활동을 통해 생성되는 약 60~70°C의 순수 발효열을 이용해 신체를 데우는 방식을 취한다. 체험자는 고운 쌀겨 속에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파묻고 찜질을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는 체내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어 혈액 순환 촉진과 신진대사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발효열 찜질은 일반적인 사우나와 달리 기초 체력 증진과 면역력 강화, 그리고 만성 피로와 근육통 해소에 효과적이다. 또한 찜질을 마친 후 몸에 남은 쌀겨 가루를 이용해 천연 스크럽을 즐길 수 있어 피부결을 매끄럽게 정돈하는 미용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미생물의 체계적인 발효 관리를 위해 모든 프로그램은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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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예원 본초 족욕 성산점
자연에서 추출된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셀프 족욕 테라피를 체험하는 곳이다. 천연미용소금, 페퍼민트 오일과 한방의 본초족욕수를 활용한 셀프족욕은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기에 충분하다. 생명체에 대한 양생, 치료, 예방에 제공되는 천연 약물을 본초라고 한다. 본초족욕에서 사용되는 본초수는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엄선된 한약재로 만들어진다. 예로부터 한의학에서는 두한족열 즉,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고 하였다. 오장육부의 축소판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발은 인간의 신체 전부가 발이다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신체이다. 족욕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해 주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예약제로 운영하므로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인근에는 섭지코지, 광치기해변 등의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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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쉴랜드
쉴랜드의 ‘쉴(SHIL)’은 ‘Sustainable Health In Life’의 약자로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7년부터 조성하여 2010년 12월 24일에 개관하였다. 해발 250m, 총 493,189㎡의 산중에 건강과 휴양, 힐링을 테마로 다양한 연수와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웰니스 관광지로 부각되며 어린이부터 전 연령층이 힐링과 여가, 치유와 휴식을 위해 찾고 있다. 쉴랜드의 시설은 본관, 건강장수체험과학관, 쉴스튜디오, 명상관, 다목적스포츠시설, 숙소동, 방갈로, 건강휴양체험시설, 의농업체험관, 편백숲 산책로, 힐링 공원 등이 있으며, 교육프로그램으로는 바른 식생활 프로그램, 치유연수 프로그램, 웰니스 프로그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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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온천 족욕길
수안보온천은 태고로부터 자연 용출되어 온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9년 당시에도 존재했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악성피부병 치료를 위해 수안보 온천을 이용할 정도로 유서 깊은 온천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온천수를 중앙 집중관리 방식으로 충주시에서 관리하며, 온천자원 보전에 주력하여 인체에 유익한 각종 무기질을 함유한 양질의 온천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안보 온천수는 지하 250m에서 용출되는 약알카리성 온천으로 칼슘,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리튬 등 인체에 이로운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수안보 온천수를 이용한 족욕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줌으로써 긴장된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심리적 안정감도 더해주며 피로와 스트레스를 없애고 숙면에 큰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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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하늘농원
제원하늘농원은 26,046㎡(8,500평) 규모의 노지와 하우스 시설을 갖추고 농림축산식품부의 무농약, GAP, 저탄소 인증을 받은 감귤농원이다. 4월 말에서 5월 초 감귤꽃을 시작으로 8월~9월 풋귤, 10월 노지귤, 12월~2월 황금향, 레드향, 천혜향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감귤마말레이드, 감귤케이크, 풋귤청, 하귤청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푸드테라피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감귤밭에서의 싱잉볼 명상과 소원을 담은 후우링 만들기 등의 소리치유를 통해 심신이 지친 이들을 위한 쉼과 휴식의 공간으로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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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장성치유의숲(축령산삼나무편백숲)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축령산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과 전북 고창군의 경계에 넓게 걸쳐있다. 축령산에 편백나무 숲이 일궈진 데는 독림가인 임종국 선생의 역할이 크다. 임종국 선생은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벌목과 6·25전쟁의 피해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축령산 일대에 삼나무 62h, 편백나무 143ha, 낙엽송 등 그 외 수종 55ha를 조림했는데, 그 수만 대략 250만 그루에 이른다. 1956년부터 34년에 걸쳐 이룬 일이다. 1,148ha에 이르는 넓은 상록수림대에 울창하게 자리 잡은 수령 40~60년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그 결과다. 현재는 산림청에서 숲을 매입(388ha)하여 지속적인 산림관리를 해 나가고 있다. 편백숲에서는 산림관리를 위한 임도(林道)가 10㎞ 시설되어 있으며, 편백나무로 특성화된 ‘치유의 숲’이 조성되어 산림욕·숲체험·숲치유 등 탐방객을 위한 휴양공감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립장성치유의숲(장성 편백치유의 숲)은 2000년 제1 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의 숲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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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 편백 치유의 숲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위치한 팔영산 편백 치유의 숲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전국 최대 규모의 편백숲을 보유한 국립공원이다.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할 목적으로 다양한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산림이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 회복은 물론이고 자연이 주는 선물인 햇빛, 바람, 경관, 향기 등을 보고 느끼면서 스트레스도 줄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심신의 회복과 휴양, 생활습관 개선 등 팔영산 편백 치유의 숲에서 체력과 면역력을 길러주는 여러 체험형 프로그램들도 경험해 보고 이색적인 숲 속 경관도 체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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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테마파크 초락당
한방테마파크 초락당은 한방의료를 바탕으로 한방헬스투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2001년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평가 (Health Tour to Korea)로 지정된 바 있다. 초락당의 시설은 원두막, 황토 토굴, 별채, 산림욕장, 불로문, 성류당, 잉어 연못, 진료실, 치료실, 황토 한증막, 초락박물관, 백련정, 인조 잔디 테니스코트 및 등산로 (허준 산책로) 등이 있다. 초락당은 옛 느낌이 나는 초가집에서 한방지료,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목욕요법, 한방 온열치료, 식이요법, 운동요법 등을 병행하는데 자연적이고 토속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초락당 뒤편 숲길에 들어서면 산림욕장 허준의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산림욕을 할 수 있으며, 진료 목적으로 들르는 사람들에게 한증막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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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녹차족욕카페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은은한 녹차 향이 퍼지며, 보성 차밭 여행의 피로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김수자 녹차족욕카페는 보성 다향아트밸리 문화체험동에 자리한 녹차 족욕 전문 카페로, 대한민국 1호 발 관리사 자격을 보유한 김수자 명인이 운영한다. 입구 카운터 한편에는 명인의 자격증과 활동 이력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발 건강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보성차로 만든 녹차 입욕제를 풀어 족욕을 즐기는 동안 작두콩차·차가버섯차 등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따뜻한 차 한 잔이 함께 제공된다. 예약 없이도 대기 인원이 많지 않으면 바로 이용할 수 있으며, 가족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인근 한국차박물관·대한다원과 연계해 보성 차 여행의 마무리 코스로 즐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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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환경성 건강 센터
공주 환경성 건강센터는 공주시 금학동에 위치한 공주시 직영 시설이다. 알레르기 질환 예방, 관리를 목적으로 조리실습, 친환경 치유 숲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중목욕탕에 가기 어려운 환자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가족탕을 운영하고 있다. 충남대학교병원 및 공주의료원, 공주시한의사회, 어린이집연합회와 연계하여 운영되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환경성 질환에 대한 교육 및 정보를 제공하고 센터 내에서 환경성 질환 예방을 위한 체험학습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공주 환경성 건강센터는 중부권, 나아가 전 국민에게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에 대한 올바른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맞춤형 예방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운영 목적으로 한다. 공주 환경성 건강센터는 공주 시내와 가까우며 우금티로와 수원지공원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주변에는 공주산림휴양마을, 금학생태공원, 공주 우금치 전적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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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활기 치유의 숲
삼척 활기 치유의 숲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깊은 숲 속에 위치한 산림 복합 휴양 치유 시설로, 울창한 자연 속에서 휴식과 활력을 얻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방문자센터, 치유센터, 트리하우스, 숲 체험장, 물 치유장, 치유숲길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숲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방문객을 위한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갖추고 있다. 아름드리 고목이 빽빽이 우거진 숲, 붉은 단풍이 물드는 숲,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진 숲, 하얀 나무껍질이 인상적인 자작나무 숲, 굴참나무 군락지, 그리고 준경묘 인근에 위치한 미인송과 대왕소나무가 있는 ‘삼척 천년의 숲’ 등, 방문객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아름답고 깊은 숲 경관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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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체험
한방스파 여용국
여용국은 조선 시대 안정복의 소설 [여용국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여용국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개인의 체질을 강조한다. 사람의 체질이 다르므로 일괄적인 마사지 방법이나 약재를 통해 효과를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별 체질과 몸, 피부 상태를 정확하게 분석한 후 맞춤형 한방 재료와 아로마, 마사지 도구까지 최적의 맞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부종이 심한 임산부, 비만, 여드름, 만성피로 등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스페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각자의 체질에 맞는 약재와 마사지법을 적용해야 올바른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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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관령치유의숲
금강소나무가 원시림 상태로 보존된 국립대관령치유의숲은 대관령 옛길, 선자령, 제왕산, 오봉산 등 백두대간 등산로와 연계되어 있는 산림치유 공간이다. 이곳은 향기와 경관 등 산림의 다양한 요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된 숲이다. 대관령의 울창한 소나무숲에 건강측정실, 치유 움막, 솔향기 터, 치유 숲길 등 다양한 산림치유 활동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숲길의 난이도와 특색에 따라 구분된 7개의 숲길과 무장애 데크로드가 조성되어 있어 누구나 쉽고 즐겁게 솔향기 숲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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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치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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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치유의 숲은 부산광역시 푸른도시가꾸기사업소가 운영하는 영남권 최초의 치유의 숲으로, 2017년 11월 부산대학교 학술림에 조성되었다. 153ha 규모에 해발 240m 안팎의 넓고 완만한 산세를 지녀 편안하게 걷기 좋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과 개울물, 산새 소리가 걸음마다 따라온다. 평지와 언덕, 계곡과 바위산 등 다채로운 지형을 품고 있으며, 아홉산 숲을 만나는 힐링로드, 회동수원지 풍광을 즐기는 솔바람길, 짙은 숲의 생명력을 느끼는 큰바위길을 컨디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흙길과 매트길, 데크길도 걷는 재미를 더한다. 산림치유·숲해설·유아숲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보만 제공합니다 — 방문 전에 각 시설로 직접 확인하십시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뀝니다.







